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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의 도로교통 패턴을 살펴보는 현재 작업의 일부인 동시에, 최근 눈에 띈 한 언론보도에 대한 나의 피드백이다.

지난 12월 21일 공개된 '[단독] 고가도로 폐쇄 서울역, 교통지옥 됐다’라는 기사는 요약하면 이렇다:


도심 차도 축소로 “출근길이 오히려 빨라진다”는 서울시 홍보와 달리 지난 2년간 서울역 일대 교통혼잡이 크게 늘어났다.

서울시는 고가도로 폐쇄 이튿날인 2015.12.14. 퇴계로(서울역-회현역), 만리재로(서울역-공덕역) 등 일대 도로 평균속도가 이전보다 개선됐다고 홍보하였다. 그러나 신문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2015.12.14.에 비해 2017.12.11. 출근시간대 퇴계로와 만리재로 도로 평균속도가 20% 이상 감소하였다. 또한 이들 도로 통행량도 폐쇄 직후 일시 반감(半減)했다가 올 들어 다시 곱절로 증가했다.

즉 도로 감소가 교통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당시 서울시의 해석은 틀렸다. 한편 경찰은 서울시가 이들 도로의 교통량 축소를 유도하기 위해 네비게이션 업체로 하여금 우회도로로 안내하도록 요청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하루종일 온갖 수준의 언론보도에 노출되는 한국인에게 이런 기사는 유난스럽지 않다. 도심부 주요도로가 막힌 이후 일대 교통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스토리는 상식적으로 들릴 법도 하다. 그러나 요즘 서울 도로 데이터에 손을 담그고 있는 내게, 이 둔기 모양을 한 기사는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착실하게 대언론 해명자료를 만들어내는 서울시가 이 기사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던 작업의 범위 안에서 이 기사가 제기하는 이슈를 둘러싼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시나브로 한국에서 남용되는 팩트체크라는 단어는 붙이고 싶지 않다. 도로 소통이란 궁극적으로 팩트의 문제라기보다 인간 심리의 문제이거니와, 내 분석을 이 기사에 대한 팩트체크로 규정지으면 노력의 가치가 절하되는 느낌이다.



도심지에서 매일 수만 대의 차량이 지나다니던 도로가 사라지면 그 지역은 어떻게 되는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영화 속 악당이나 궁금해 할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일정 수준 이상 많아지면 자동차가 바로 악당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제 대도시권에서 그것은 악당의 질문이 아니라 악당을 몰아내려는 자들의 질문이 되었다. 너무 많은 자동차가 악당이라면 도로를 넓혀 악당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좁혀서 좀 불리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공공에서 할 일이라는 생각. 그렇게 해서 자동차 행렬이 줄어들고 대신 여유로운 보행자가 늘어나면 그것은 도시와 시민에 이로운 것이라는 생각. 이것은 정책수단의 변화를 넘어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논의하기 어렵다.


아무튼 대중교통 활성화, 주차 규제, 세금 중과 등 자동차 수요를 줄이기 위한 여러 정책 옵션의 성과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명 도로 다이어트 — 의도된 수요(induced demand)의 저감 — 는 상대적으로 실험적인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참신하다는 평가와 극단적이라는 반응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해관계가 뚜렷할수록 리스크 높은 실험적 접근을 거북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차가 많으니 도로를 줄여야 한다는 반상식적인 논리를 대중에게 고루 이해시키기도 어렵지만,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변화, 즉 주었던 것을 빼앗는 형태의 접근이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도 있다.


다만 서울의 도로 다이어트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청계천 ‘복원’, 광화문광장, 시청앞광장, 연세로 등의 사업이 이해관계자를 넘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는 이러한 포스트모던한 사업이 주변환경에 가져다주는 여러 방면의 변화를 목도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평가의 온도가 어떻든 평가의 척도가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을 대중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서울 시민은 점점 그냥 ‘대중’이라 부르기 미안할 만큼 똑똑해지고 있다.

서론이 더 길어지기 전에 정리하면, 서울로7017 사업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도로교통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야와 20세기적 선입견을 극복하는 교양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이 기사는 일단 그런 점이 결여되어 있다.

일단 이것으로 서론을 갈음하고 데이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글에서 다룰 핵심 데이터는 TOPIS에 공개된, 2014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4년간의 서울 도로구간별 매시간 평균속도와 주요지점 교통량 데이터다. 재미있게도 기사에서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통해 연결되었던 퇴계로와 만리재로의 평균속도 데이터를 단독입수했다고 썼다. 언론사가 ‘단독’입수했다고 말할 때 그것이 꼭 삼성 X파일이나 최순실 태블릿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공공기관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자료를 단독입수했다고 말하는 심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 이전과 이후 주변지역 혼잡도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기사의 요지도 '지난 2년간 서울역 일대 교통혼잡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물음은 단답형이 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로 사업이 본격화된 2015년 이후 경찰청 등과 논의하여 상당한 교통체계 정비에 나섰다. 그 중에는 우회로의 차도 증설, 신호체계 개편과 같이 정체 해소에 기여하는 것도 있었고, 최소 8개 버스노선의 퇴계로 방면 확충과 같이 부하를 늘리는 것도 있었다. 이런 작업이 시차를 두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종합적 판단을 위해서는 기간을 더 나누어 보아야 하고, 대중교통 이용객 분석, 서비스수준(LOS) 분석, 설문조사 등 다각적 검토가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나는 자꾸 이렇게 잡설이 길어진다.. 여긴 한국이니까 일단 숫자를 뽑아보기로 한다.


먼저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 시점인 2015.12.13. 24시를 기준으로 앞의 데이터를 두 기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폐쇄 이전 713일과 폐쇄 이후 749일간 데이터를 요일별로 나누어 매시간 평균속도를 구하였다. 그 중 서울역 주변 도로구간의 평균속도값을 살펴보았다. (데이터 핸들링은 Python 3.6에서 pandas를 이용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역 주변 도로구간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보는 것과 같이, 빨간색으로 그려진 서울역 고가도로가 사라짐으로써 도심과 서울 서쪽을 오가는 교통을 분담하던 칠패로와 서소문로의 교통량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아래 그림에는 생략된, 서울역 남쪽에서 청파로와 한강대로를 잇는 (토끼굴) 도로를 통해 양쪽을 오가는 경로도 청파동 주민 등 일부에게는 고가도로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의를 간명하게 하기 위해 여기서는 생략한다.


서울역 고가도로 관련 주요 도로의 도식화


먼저 기사에서 지적한, 만리재로와 퇴계로의 요일별 매시간 평균속도 변화는 다음과 같다. 왼쪽이 고가도로 폐쇄 전, 오른쪽이 폐쇄 후 기간이다.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 전/후 만리재로 평균속도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 전/후 퇴계로 평균속도


도심 도로이므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지만 폐쇄 전/후 기간 모두 평일(월-금)의 평균속도 흐름은 요일간 구분이 어려울 만큼 상당히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점이 눈에 띈다. 때문에 양 기간의 속도 패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래프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너무 길어진 이 글을 잠시 끊고, 남은 또 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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