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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교과서를 들출 필요도 없이, 도시 내 어떤 도로나 지역의 교통 흐름이 바뀌었을 때 의심해 보아야 할 이유는 상식적으로 하나가 아니다. 도로의 연결체계나 용량에 손을 대는 것과 같은 물리적 변화 외에도, 신호체계의 변경이나 대중교통의 (재)배치 같은 운영의 변화는 교통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보다 구조적인 변화요인도 많다. (재)개발과 같은 토지이용 변화는 교통 흐름에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과정을 요구하는데, 그 영향은 주변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도시 내 경기 순환, 산업구조 및 인구구조 변화도 수도권과 같이 변화 속도가 빠른 지역에서는 고려할 만한 변수다. 이 모든 변화의 흐름과 상호작용하며 도로 위 개인이 취하는 선택의 다이나믹스도 포착하기는 어렵지만 존재한다.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는 이 중 여러가지를 수반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서울역고가 통행금지에 따른 교통대책>은 말 그대로 관련 교통대책으로 마련되고 이행된 일련의 조치들이다. 이는 주변 도로의 물리적 변화와 신호체계 개편, 대중교통 재배치 등을 포함하는데, 주로 2015년 후반기에 이루어졌다.


<서울역고가 통행금지에 따른 교통대책> 중 도로체계 개편.


의주로 지하차도를 평면화하고 칠패로로 진입하는 교차로의 차도를 증설하는 등의 공사는 명백히 교통용량을 늘리는 조치다. 도로 조건 변화에 맞춰 교차로 신호 운영을 ‘최적화’했다는 신호체계 변화는 내용이 명시되진 않았으나 어쨌든 최소한 개악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주변을 지나던 버스노선을 퇴계로로 끌어오는 조치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교통체증을 줄이기보다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듯하다. 15개월쯤 운영되다 없어진 8001번을 차치하더라도, 7개 버스노선이  2015.12.13.부터 퇴계로를 지나게 되었다. 이는 첨두시 기준 시간당 대략 50대 안팎의 버스가 퇴계로 차량행렬에 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별개로 추진된 도로 사업이 있다면 그것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는 서울로 개방을 전후해 만리재로퇴계로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실시하였다. 서울로 조성은 보행환경 개선을 통한 주변지역 활성화라는 거시적 계획의 일부였기에, 서울로 백서에서 언급한 바 이들 사업은 연계된 것이다. 아무튼 두 도로 모두 차선을 일부 축소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등 자동차 입장에서는 명백히 불리한 변화였다.


이곳의 토지이용 변화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리동-중림동은 20세기 산자락 북아현동에서 한강변 광흥창까지 물결치던 ‘달동네'의 일부였다. 2000년대 들불처럼 번진 재건축·재개발 사업으로 이 지역도 고층아파트가 노후주택지를 점령해가는 형국이다. 특히 만리재로에 접한 ‘센트럴자이’(1341세대)와 ‘한라비발디센트럴’(199세대) 아파트단지는 각각 2014년, 2015년 철거공사가 시작되어 2017년 8월, 2018년 1월 준공된다. 노후 주거지역이 아파트단지로 대체됨으로써 일어나는 인구특성 변화와 주변지역 변화가 어떠한지, 교통 패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별개의 연구 꼭지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적어도 도로 부하를 낮추는 힘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미리 말할 수 있다. 최근 이 지역에 대한 부동산 업계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들 변화요인 중 2015년 이후 서울역 주변 교통 흐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역 고가도로 주변 교통 흐름의 잠재적 영향 요인


이러한 사항을 염두에 두고 만리재로와 퇴계로의 평균속도 변화를 살펴보면, 속도 변화의 사정을 짐작하기 한결 쉬워진다.


만리재로 평일 출퇴근 시간대(7-8시, 8-9시, 17-18시, 18-19시) 평균속도 변화.


먼저 만리재로의 경우 서울역 방향(S, 1020022400)의 속도 변화 패턴이 독특하다. 고가도로 폐쇄 이후 줄어든 교통량으로 다소 빨라진 속도는 2016년 9월 갑자기 뚝 떨어졌다. 정확한 원인을 맺을 수는 없으나, 추측컨대 서울로 공사 과정에서 차선 운용이 바뀌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후 조금씩 상승하던 평균속도는 2017년 4월부터 다시 감소한다. 만리재로 보행환경 개선 사업에 따라 도로용량이 줄어들고 횡단보도가 설치된 시기이자 서울로가 개방되기 시작한 때다. 2017년 11월 이후 퇴근시간대 평균속도가 줄어드는 경향이 얼핏 보이는데, 고착화되는 패턴인지는 향후 데이터와 연결지어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공덕 방향(N, 1020022300) 만리재로는 고가도로 폐쇄 이후 평온한 흐름을 이어가다 2017년 3월부터 진폭이 커졌다. 서울로 공사 완료, 센트럴자이 막바지공사와 입주, 만리재로 보행환경 개선사업 등 여러 환경 변화가 뜯어서 보기 어려울 만큼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보다 합리적 분석을 위해서는 교통량 데이터도 함께 보아야 한다. 만리재로는 오랫동안 도심 유입 교통을 분담해온 간선도로임에도 교통량을 자동 측정하는 검지기가 없어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교통량 데이터가 없다. 반면 퇴계로는 서울역-회현사거리간 교통량 데이터가 제공되는 시늉이나마 하고 있다.

퇴계로 평일 출퇴근 시간대 평균속도 변화


퇴계로의 명동 방향(S, 1010002600) 평균속도는 고가도로 폐쇄 이후 차량 유입이 줄면서 살짝 개선되는 듯하다가 다시 나빠지는 모양새다. 2017년 2-3월의 보행환경 개선사업으로 3차로에서 2차로로 바뀌고 횡단보도가 추가되면서 속도가 한층 다운그레이드되었다. 2016년 대비 2017년의 교통량이 30-50% 가량 줄었지만 아무래도 도로 다이어트의 영향이 커 보인다.


퇴계로 평일 출퇴근 시간대 평균속도(-)와 교통량(o)


서울역 방향(N, 1010002500) 퇴계로는 원래 퇴근시간대 정체가 심한 구간이었는데, 배출구에 해당했던 고가도로가 막히면서 당연하게도 흐름이 한결 나빠졌다. 통일로 방면 경로가 추가되면서 서울역 교차로 직전 신호대기가 생긴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폐쇄 이전 대비 2016년 교통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음에도 평균속도는 뚜렷이 떨어졌다. 다만 2016년 12월 19일부터 2017년 6월 30일까지 교통량 데이터가 공란 처리되는 사이 이 구간 교통량이 곱절로 늘어난 사연이 무엇인지, 그에 비해 속도 악화가 두드러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당장 이유를 찾기 힘든 탐구거리다.


제대로 보자면 서울역 고가도로의 우회로에 해당하는 도로구간의 변화도 뜯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소 지리한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또 만리재로와 퇴계로의 사정을 이 정도 보는 것으로도 나의 메시지는 담은 셈이기에 이것으로 갈음할까 한다.


좀 길게 썼지만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서울 교통 흐름의 변화를 이해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만리재로와 퇴계로, 나아가 서울역 주변의 교통 흐름이 고가도로 폐쇄라는 이벤트로 요동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도로에서는 그 전후로 여러 다른 이벤트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각자의 이유와 정당성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힘에 반응하여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변화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일어난다. 이런 다종다양한 변수의 상호작용은 마치 빗물의 흐름처럼 복잡한 것이다. 귀찮아서 그냥 수도꼭지 여닫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럼 귀찮았다고 밝히는 것이 도리다.


서론에서 잠깐 짚었듯, 사실 빗물이냐 수돗물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에 대한 관심과 교양이다. 한국인에게 도시란 문득 꽤나 익숙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고 모두 한글을 제대로 쓰는 것이 아니듯, 도시민이라고 모두 도시를 실체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왜 전세계 도시정부들이 운전자 - 운전대 잡은 신경증자 - 들의 분개를 감수하고 도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지, 어째서 그것에 호응하는 시민들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점의 차이라기보다는 관심의 차이, 혹은 교양의 차이다.

대도시의 교통정체는 어차피 해결 불가능하니 자가용에 에어컨과 오디오시스템을 잘 갖춰놓으라는 어느 노학자의 조언은 그냥 나온 냉소가 아니다. 운전자들은 자동차세와 유류세로 온전한 권리 행사에 필요한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전세계 정부는 도로기반시설 예산 부족에 시달린다. (한국이나 중국이 다소 예외인 것은 분명하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설령 예산을 모으더라도 도로 늘릴 공간 자체가 없다. 고비용에 비해 혜택은 적고 그나마도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교통체증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의 상당부분은 운전자의 몫인데, 여기서 운전자는 그 비용의 청구자이자 부담자가 된다. 그 굴레에 갇힌 운전자 시민의 수를 줄이는 것. 그 비용을 줄여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생활공간의 조성에 투자하는 것. 그보다 합리적이고도 아름다운 방향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이 주제를 놓고 한 세기 가까이 고민한 사람들의 결론이다.

그런 견지에서 어떤 교통지옥은 조성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을 만나야 비로소 반응하니까 말이다. 단 서울시는 염라대왕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합당한 대안과 과실의 비전을 제대로 내놓아야 한다. 여기서 대중교통 이슈, 주택 이슈, 환경 이슈가 자연스레 나온다. 내가 볼 때, 그리고 아마도 많은 세계인이 볼 때 이제 서울은 최소한 그런 이슈로 다툴 만한 도시로 안다.

매일경제의 기사가 짜증을 넘어 괜한 민망함을 돋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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