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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계의 장대함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통해 풍성해졌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바로 속도의 아름다움이다. 폭발하듯 숨을 토하는 구렁이와 같이 거대한 파이프가 후드를 장식하는 레이싱카, 기관총 불꽃에 올라탄 듯 포효하는 자동차는 승리의 여신상보다도 아름답다.”

We declare that the splendor of the world has been enriched by a new beauty: the beauty of speed. A racing automobile with its bonnet adorned with great tubes like serpents with explosive breath … a roaring motor car which seems to run on machine-gun fire, is more beautiful than the Victory of Samothrace.

— Filippo T. Marinetti (1909) “Manifesto del Futurismo”


오늘날 우리가 ‘문명의 혜택’이라 말하며 떠올리는 기술 및 응용물 중 그 필수불가결함을 의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휴대)전화, 인터넷, 자동차, 냉장고, 전력망, 상하수도, 약품과 백신, 합금… 당신은 그것들이 없어진 세상을 진정 상상할 수 있는가? 어느날 신이 당신에게 이러한 문명의 혜택과 양 다리 중 어느 한 쪽만 선택하기를 요구한다고 상상해 보자. 전혀 내 것이 아닌 문명과 분명 내 것인 다리임에도, 이 요구는 생각할수록 가혹하게 느껴질 것이다.

신체기관에 맞먹는 필수불가결함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기술과 응용물이 우리의 갈급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뜻 자연스럽다. 불완전한 우리 인간에게는 타고난 여러 한계 내지 결핍이 있고, 그것들은 집단적-종적 필요를 구성하며, 우리 가운데 (뛰어난) 누군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켜 모두(가 아니라면 적어도 다수)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모종의 노력 끝에 기술 내지 응용물을 결국 만들어내고 제공한다는 스토리.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위인전이나 동화 등을 통해 이러한 스토리를 내면화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때로는 숨겨진 문제의 해결에 도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오늘날 전천후로 강조되는 소위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능력도 궁극적으로 이러한 위대한 스토리의 크고 작은 일부가 될 것이기에 중요하다.

그런데 기술의 사회사와 그 등장인물들의 생애사를 들여다볼수록 나는 이러한 스토리, 이러한 믿음이 신화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 어떤 기술이 세상에 등장하고 진화하고 적용된 역사의 대부분은 필요-노력-충족이라는 논리적 연쇄반응으로 이루어지지도, 열정에 찬 호기심과 도전의 에너지만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어른 이야기 —  뒷맛 개운치 않은 소설이나 잔혹동화에 가깝다.


자동차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다임러나 포드, 시트로엥이 아닌 칼 피셔라는 듣보잡(?)을 내세우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분명 자동차는 현대인에게 필수불가결해졌지만, 그 역사가 사람들의 긴요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과정이라 하는 것은 일종의 미화, 포장술이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이런저런 욕망과, 그 욕망을 해소해주는 대가로 이익을 취하려는 욕망이 뒤섞인 투쟁기라고 할 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아직 우상화되지 않은 피셔의 열정적이고 독특한 생애사는 자동차 역사 초기 정념의 에토스를 더없이 흥미롭게 보여준다.

비록 한국에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피셔는 미국에서는 완전히 가려진 인물은 아니다. 피셔의 고향인 인디애나주 Greensburg에는 그를 기리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from Indiana Historical Bureau


1874년 Greensburg에서 태어난 피셔는 자동차가 유효한 교통수단이 되는 데 기여한 기업가이다. 그는 1904년 Prest-O-Lite를 공동창업하여 차량용 아세틸렌 전조등을 전국에 보급하였다. 유명한 500마일 레이스 및 자동차 신기술 시험무대 장소인 인디애나폴리스 스피드웨이를 공동설립하였다. 국가 도로망의 확장과 개선을 위한 ’좋은 도로 운동’의 지지자였다. 동서간 링컨고속도로(1912), 남북간 딕시고속도로(1914)와 같은 미국의 대륙횡단도로의 건설을 주창하였다. 이 도로는 자동차 장거리여행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마이애미비치를 주요한 휴양지로 개발하였다. 1939년 7월 15일 사망하였다.


이 표지석은 제한된 지면으로 그의 중요한 족적을 짚어준 것은 맞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공통분모 외에 언뜻 한 사람의 것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의 성과들을 하나의 생애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주석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그 주석을 자동차의 역사와 엮어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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